故 김수환 추기경 - 추모 게시판
2009-03-16 6:18 pm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만남 오스골라 | 1256

(이 글을 2009년 2월 17일 작성했으나 망설이다가 오늘 용기를 내어 게시합니다.)

 

1969년 내 나이 26살의 어느 날, 나의 종조부(從祖父)님께서는 나를 불러 까르디나르(Cardinal: 추기경)를 뵈러 가자 라고 하시어 할아버지를 따라 명동성당으로 갔다.

그 종조부님은 경성제대에서 유진오(兪鎭午)박사님과 동문수학(同門修學)했고, 보건후생부 차관, 대구매일신문 사장 그리고 4대 및 5대 국회위원을 역임했으며, 장면박사(張勉내각수반)와 정치노선을 같이하신 분으로서, 김수환 추기경(金壽煥 樞機卿)님과는 오래 전부터 서로 내왕하시는 격의 없는 사이인지라, 이날 나를 데리고 한국인 최초 추기경이 되심을 축하 드리는 인사차의 예방(禮訪)이였지만, 나로서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추기경이라는 분을 대면 한 역사적 특기사항이었고,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오늘의 그분은 그 동안 많은 인애(仁愛)의 업적과 가히 성인(聖人)의 행적을 남겨 모든 이의 추앙 속에 오늘 서거하셨으니, 어린 시절 뵙게 된 그분과의 인연이 내게는 마치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냥 감회가 크다.

 

그른데 혹자(或者)는 생전에 그분을 만난 분이 이 땅에는 수도 없이 많은데 왠 호들갑이냐? 라고 하시겠으나, 30년 전 그 당시로서는 한국최초의 추기경님 같은 큰 선인(善人)을 독대(獨對)한 그 행운이 하나의 기사(記事)감이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싶고, 또 다른 하나는 그날 그분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배석 없이 장시간 조용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담소(談笑) 하셨는데, 그 선인(善人)께서 잔잔하게 발산하는 어떤 파(波)와 같은 것을 내가 느꼈다는 점과, 이는 마치 조용한 봄날의 아침햇살 속에 온 몸이 따스해지는 것 같은 정감(情感)의 반응이 나에게 일어 났는데, 이것이 후일 나 같은 평범한 민초(民草)에게 그  선인(善人)의 잔영(殘影) 즉 그 날, 그 波의 감응이 나의 내면에 항상 흐르고 있었고, 내 생활의 면면에 영향을 준 것도 특기 할 만한 사항 이라는 점, 또 그분의 善의 波가 많은 분들에게 역시 감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또 이것이 한국 천주교 내에 어떤 변화를 조용히 일게 하는 波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많은 신자 또는 비(非) 신자들이 그러한 그분의 波(파)를 공감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 다분히 게시(揭示)할 만한 사유가 된다고 보고, 촌스럽지만 이 글을 여기에 올리오니 해량(海諒)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 날 이후 그분을 다시 뵙지 못한 것이 나에게는 또한 큰 아쉬움이었다.

2009년 2월 16일 천주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 향년 87세로 서거하셨다.

오늘 한국에서는 종파와 여야 및 좌우익을 막론하고 그의 서거를 애도 했고, 그는 세계의 역사 속에 특별히 [선(善)하신 분]으로 평가 되었다.

16일 오늘, 언론에서 보도한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