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수환 추기경 - 추모 게시판
2009-03-24 8:13 am
하느님 나라에 계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 올립니다. 박준언 | 2307

추기경님 안녕하세요?

천국 주님 품에서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는 지난 1984년 당시 연인사이였던

지금의 제 아내와 함께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영세를 받은 지 사반세기가 지났건만

그동안 저는 그야말로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주일에 한번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톨릭 신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이마저도 툭하면 주일 미사에 빠지곤 했습니다.

고백성사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지요.

 

한마디로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된 후로도 오랜 시간을 탕자로 살아온 셈이지요.

 

그런데 지난 1월 저도 모르게

성경을 읽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매일미사집에 나오는

성경 말씀만 읽던 저로서는 여지껏

한번도 성경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었지요.

 

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처음에는

신약만 읽을 생각으로 성경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을 다 읽고 나니 이제야

그동안 신부님들의 강론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들어오던

주님의 말씀들이 보다 생생하게 제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읽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2월 중순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추기경님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신문이나 TV 뉴스를 통해 추기경님의 소식을 접하는 것이 전부였지요.

 

그나마도 추기경님이 서울 대교구장직을 떠나신 후로는

추기경님에 관한 소식은 더욱 소원해졌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 같이 불량한 신자로서는

추기경님이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 저는 위성TV방송을 통해

평화방송 프로그램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위성방송을 수신한지 수년이 지났건만

이제서야 평화방송을 시청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요즘 매일 추기경님의 생전 인터뷰 방송을 시청하며

추기경님의 일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추기경님이 참으로 겸손하시고 인간적이신 분이라는 점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생전에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군요.

 

며칠 전 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명동성당을 찾았을 때

성당 입구 한쪽 면에 전시된 추기경님의 생전의 모습 사진들을 보며

하나하나 제 카메라에 담아두었습니다.

저는 그중 환하게 웃고 계신 모습의 사진을

마치 영정사진 들듯이 제 두 손으로 꼭 안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더군요.

 

추기경님이 기도에서 자신을 주님 앞에 대죄인이라고 하시더군요.

추기경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면 저 같은 불량한 신자는 어찌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이제부터라도 추기경님이 강조하신

주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는(total surrender)자 되라는 말씀을

제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기겠습니다.

 

저는 요즘 구약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양이 방대하여 그만둘까 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내용들이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좀이 쑤실 것 같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구약을 제가 그동안

한 번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이군요.

 

저는 또한 영세 후 거의 참석해본 적이 없는

새벽미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입니다.

추기경님, 이것을 감히 성령의 은총이라고 불러도 될지요?

 

추기경님,

당신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얼치기 신자인 저를 답답해하시며

이 모든 선물을 제게 주시며 하느님 품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처럼 저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자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많은 수고를 하셨으니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기 기도드립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서울 봉천동 성당의 그레고리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