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봉신부가 성경에서 건진이야기

제16회 요아스의 변절

재생 시간 : 47:19|2015-03-18|VIEW : 8,686

갈수록 세상이 험하다고 합니다. 세상의 뉴스는 갖은 재난과 사고를 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흉한 소식이 들리면 으레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아야제...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노?"구구절절 내용을 캐는 손주들에게는 무서운 표정으로 가림막을 치셨습니다. &qu...

갈수록 세상이 험하다고 합니다.
세상의 뉴스는 갖은 재난과 사고를 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흉한 소식이 들리면 으레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아야제...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노?"
구구절절 내용을 캐는 손주들에게는 무서운 표정으로 가림막을 치셨습니다.
"뭐 좋은 거라고 알라카노? 몰라도 된대이..."
어른이 되니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는 걸, 몰라도 될 일이 수두룩하다는 걸 느낍니다.
그때처럼 할머니께서 세상의 흉한 소식을 몽땅 가려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옛날 옛날의 인간사도 특별히 선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땅의 첫 사람 카인이 아우 아벨을 살인한 일로부터 시작된 흉보는 세기의 살인마 라멕에게 이르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여기서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가 아니라 카인의 자손을 말하는 것은 아시지요?)
그 사람 말을 들어볼까요.

"나는 내 상처 하나에 사람 하나를, 내 생채기 하나에 아이 하나를 죽였다." (창세 4,23)
어찌 인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섬뜩합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우 아벨을 살인한 카인에게 다만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로 살아가라는 형벌을 주셨는데 솔직히 생각하면 벌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캉 우리 생각이고 하느님 관점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엘리야 예언자를 벌벌 떨게 했던 아합 왕의 처 "이제벨"의 이름은 악녀의 대명사처럼 기억하면서도 악한 행위로 따질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합의 딸 "아탈야"에는 별로 주목지 않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들추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야다 사제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고 기록된 요아스 왕, "사악한 여자 아탈야와 그의 아들들이 하느님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 주님의 집에 있는 거룩한 것을 모두 바알들을 위하여 써 버렸던 것"을 보수하였던 열정적 믿음의 소유자 요아스가 폭군으로 삶을 마감한 사실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16회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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