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봉신부가 성경에서 건진이야기
성경을 읽다보면 마음에 특별히 와 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같은 경우 로마서의 한 구절,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로마 13,12-13)라는 말씀으로 삶이 완전히 변화되셨는데
제 경우에는 읽는 때마다 감동적인 구절이 매번 바뀝니다.
그 만큼 제 삶에 다양한
각도에서 변화시키시려는 주님의 안쓰러움이 아닐까 싶어서 가끔 죄송해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그냥 읽고 지나치기 싫어서 노트에 옮긴 구절인데요.
한번 읽어보여
드리겠습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내는 일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베드
3,21. 공동번역)라고 말하는 베드로 사도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이렇게 세밀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때
정말 마음이 벅차시지요.
성령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서도 우리들이 원하는 바,
우리들이 소원하는 모든 것에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챙겨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준비하면서 저도 기도를 드렸는데요.
이 시간을 통해서 모든 교우분들게
무엇보다 바른 양심을 살아내는 힘이 주어지기를 청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하고 원하는 하느님 나라는 나 너 할 것 없이 하느님 자녀 모두가 그분께서 주신
양심에 따라 세워지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비록 우리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둘러 단죄하지 않으시고 내 안의 양심을 자극하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심판 자리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자리가 어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비심의 기도'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심판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오늘도 많은 영혼들이 스스로 지옥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피눈물을 흘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19회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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