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봉신부가 성경에서 건진이야기
벌써 꽤 오래된 이야기이지요.
숭례문이 무너져 내리던 날, 저는 지리산 산골이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방학 때마다 여기저기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성경을
통독하곤 했는데요.
그때도 지리산에서 성경을 읽는 중이었지요.
당시에 바오로
서간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바오로 사도의 글은 참 감동적인 사연이 많습니다.
읽다보면
마음이 울컥 내려앉았다가 느닷없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에 그 소식을
들으니까 문득,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라"시던 어른의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유적지에서 가면 언제나 사멸을 생각하고 철학적 고민을 할 수 있을 때 역사는 스승이
될 것이라고 하셨지요.
늘 우리에게 한 시대를 제압한 영웅이 아니라, 우직하고
어리석은 민초가 역사의 주인공임을 새기는 일이 '역사 바로보기'라던 말씀이 새롭게
기억났습니다.
인류의 태초를 알려주는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수천
년을 통해 전해온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수천 년을 이어 우리 생활안에서 복음으로
되살아나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신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반복되고 거듭된
경험들은 지금을 이끌어주는 지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유물에 관심을
두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 유명한 숭례문이 불에 타서 한 점
재로 남는 것을 보면서 땅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성경이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
인간의 책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땅의 인간이 하늘의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 낼
방법은 없다고도 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글자를 그대로 믿는 일을 삼가 할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성경은 감성을 지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세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높고 높은 곳에 더 높이 오르면 만나주겠다 하는
어르신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와 거두어 주시는 분이심을 알려 주니까요.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삶을 배우기 위해서 고민하는 일이라면 은혜롭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비틀어 보는' 일마저도 지금 나아갈 바를 깨닫게 한다면 큰 은총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꾸민 이야기입니다.
그 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아주 오랜 세월을 살며, 울고 웃으며 함께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저는 성경을 통해서 전해진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야말로 귀중한 역사의 증거사료를
넘어선 인간의 정서이며 삶의 결정체임을 의심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함께 느낌'이란
이렇게 온전한 것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서 함께' 하기를 그리도 소원하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어느 날 이야기입니다.
유다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온 힘을 쏟던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의 반대가 얼마나 드셌던지 급기야 '모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힘든 일을 겪은 바오로 사도가 회당 바로 옆집에
살았다는 티티우스 유스투스의 집으로 갔다고 하는데요... (20회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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