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순교특강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이라는 주제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병인박해는 그 이전에 있었던 여러 번의 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와 마찬가지로 영광스러운 순교자와 순교 성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수많은 배교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엔도 슈사쿠가 지은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㰡침묵㰡'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기치지로라는 일본인 교우가 나옵니다.
겁 많고 비열한 인물이지요.
약삭빠르면서도 교황하고 심지어 배신도 서슴치 않습니다.
스승 페레이라 주교의 배교 사실을 확인하려는 로드리고 신부를 일본으로 안내하였으면서도 자기가 밀고하여 로드리고 신부는 체포됩니다.
그런데도 다시 옥에 찾아가서 자기 행동을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뻔뻔스럽게도 성사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엔도 슈사쿠는 로드리고 신부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기치지로와 내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엔도는 배교자 기치지로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은 열려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병인박해 기록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던 순교 행적이 있습니다.
병인박해 초에 평양에서 순교한 성인 류정률 베드로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1866년 병인년 정월 초하룻날이었습니다.
양력으로는 2월 16일이라고 하지요.
류정률 성인은 설날 낮에 세배를 다니고, 저녁에 고둔리 공소에 갑니다.
공소에서 교우들과 성서를 낭독하던 중에 포졸들이 들이닥칩니다.
그래서 류정률 성인은 집주인 정 빈첸시오 회장, 우세영 알렉시오 성인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평양 감영으로 끌려갑니다.
평양 감영에서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문초를 받았는데 혹형과 고문으로 대부분의 교우들이 배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류정률은 홀로 굳건히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평양 감사 정지용이 배교한 교우 100여 명으로 하여금 한 사람이 세 대씩 류정률을 때리게 하였습니다.
결국 체포된 다음날인 2월 17일 300여 대의 매를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류정률을 죽인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배교자들이었습니다. 물론 평양 감사의 명령이었습니다.
배교의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 류정률을 때려죽이라는 수령의 명령에 따라서 배교자들이 류정률 베드로 성인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증오에서 나온 직접적인 가해 행위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신앙 고백을 한 경우에 순교라 부릅니다.
류정률 성인의 경우에 신앙의 적대자는 박해자가 아니라 배교자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사는 배교, 배교자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교 행위나 배교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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